앉는 게 불편하거나, 화장실에 갔다가 피가 나거나, 항문에서 뭔가가 튀어나오는 경험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처럼 말하기는 꺼려지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겪고 있는 흔한 항문 질환이 바로 '치핵(Hemorrhoid)'입니다. 흔히 '치질'이라는 말로 통칭되기도 하지만, 정확히는 치질 안에 치핵, 치열, 치루 등 다양한 항문 질환이 포함됩니다. 오늘은 그중 가장 흔한 치핵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치핵이란 무엇인가요?
치핵은 항문 주변의 혈관(정맥)과 이를 둘러싼 결합 조직이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늘어나고 부풀어 올라 덩어리를 형성하는 질환입니다. 항문관 내에는 혈관, 근육, 탄력 섬유 등으로 구성된 쿠션 조직이 있어 배변 시 충격을 완화하고 변이 새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쿠션 조직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르거나 늘어져 발생하는 것이 바로 치핵입니다.
치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 내치핵 (Internal Hemorrhoid): 항문관 안쪽, 치상선(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경계선) 위에 발생한 치핵입니다. 초기에는 통증이 없고 출혈만 있는 경우가 많지만, 진행되면 항문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 외치핵 (External Hemorrhoid): 항문 바깥쪽, 치상선 아래 피부에 발생한 치핵입니다. 신경이 분포되어 있어 통증이 심하고, 덩어리가 만져지며, 혈전(피떡)이 생기면 갑자기 부어오르면서 극심한 통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2. 치핵의 주요 원인
치핵의 정확한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항문 주변의 혈관에 압력이 가해지거나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발생 또는 악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못된 배변 습관
- 변비: 배변 시 과도하게 힘을 주면 복압이 상승하고 항문 혈관이 확장되어 치핵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킵니다.
- 장시간 변기에 앉아 있는 습관: 스마트폰을 보거나 책을 읽으며 변기에 오래 앉아 있으면 항문 혈관에 지속적인 압력이 가해져 혈액이 고이게 됩니다.
- 설사: 잦은 설사도 항문 주변에 자극을 주고 염증을 유발하여 치핵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복압 증가
- 임신 및 출산: 임신 중 커진 자궁이 골반 혈관을 압박하고, 출산 시 복압이 크게 증가하여 치핵이 발생하거나 악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무거운 물건 들기, 격렬한 운동 (예: 등산, 골프): 복압을 높이는 행동은 항문 혈관에 부담을 줍니다.
생활 습관
- 오래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직업: 장시간 같은 자세로 있으면 항문 주변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치핵 발생 위험이 높아집니다.
- 음주: 알코올은 혈관을 확장시키고 탈수를 유발하여 치핵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 소화 과정에 영향을 주어 변비를 유발하거나 항문 주변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 섬유질 섭취 부족 및 수분 부족: 변비를 유발하여 치핵의 주요 원인이 됩니다.
유전적 요인: 가족력이 있는 경우 치핵 발생 위험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노화: 나이가 들면서 항문 주변 조직의 탄력이 감소하고 혈관 벽이 약해지는 것도 원인이 됩니다.
3. 치핵의 주요 증상
치핵의 증상은 치핵의 종류와 진행 단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가. 내치핵의 진행 단계별 증상
- 1도 치핵: 항문 안에 위치하며, 배변 시 출혈만 나타납니다. 통증은 거의 없습니다.
- 2도 치핵: 배변 시 항문 밖으로 돌출되었다가 배변 후 저절로 다시 항문 안으로 들어갑니다. 출혈, 가려움증, 불편감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 3도 치핵: 배변 시 항문 밖으로 돌출된 치핵을 손으로 밀어 넣어야 들어갑니다. 통증, 가려움증, 불편감, 출혈 등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 4도 치핵: 항상 항문 밖으로 돌출되어 있으며, 손으로 밀어 넣어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통증, 출혈, 분비물, 가려움증, 심한 불편감 등으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줍니다.
나. 공통적인 주요 증상
- 출혈: 가장 흔한 증상입니다. 배변 시 선홍색 피가 변기에 떨어지거나 휴지에 묻어 나옵니다. 통증 없이 피만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 탈항: 항문 밖으로 덩어리가 빠져나오는 느낌이 듭니다. 초기에는 저절로 들어가지만, 진행될수록 손으로 밀어 넣어야 하거나 아예 들어가지 않게 됩니다.
- 통증: 주로 외치핵에서 통증이 심하게 나타나며, 내치핵은 보통 통증이 없지만 염증이 생기거나 혈전이 생기면 심한 통증을 유발합니다.
- 가려움증 및 불편감: 항문 주변이 가렵거나 묵직하고 불편한 느낌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 부종: 항문 주변이 붓고 덩어리가 만져집니다.
- 분비물: 늘어진 치핵 조직에서 점액성 분비물이 나와 항문 주변이 축축하고 지저분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4. 치핵의 치료법
치핵의 치료는 증상의 심한 정도와 치핵의 단계에 따라 생활 습관 개선, 약물 치료, 비수술적 시술, 수술적 치료 등으로 나누어 접근합니다.
가. 보존적 치료 (생활 습관 개선 및 약물 치료)
초기 치핵(1~2도)이나 증상이 경미한 경우 가장 먼저 시도하며, 수술 후에도 재발 방지를 위해 꾸준히 병행해야 합니다.
좌욕: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40~42℃ 정도의 따뜻한 물에 하루 2~3회, 5~10분씩 엉덩이를 담그고 앉아 있습니다. 항문 주변의 혈액 순환을 돕고, 통증과 부기를 줄이며, 청결을 유지하여 증상 완화에 큰 도움이 됩니다.
식이 요법: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 과일, 통곡물을 충분히 섭취하고, 물을 많이 마셔 변비를 예방하고 변을 부드럽게 합니다.
배변 습관 개선: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지 않고(5분 이내), 배변 시 과도하게 힘을 주지 않습니다. 변의가 느껴지면 바로 화장실에 갑니다.
약물 치료:
- 연고/좌약: 항문 주변의 염증과 통증, 가려움증을 완화하는 스테로이드, 국소 마취제 성분의 연고나 좌약을 사용합니다.
- 경구 약물: 혈관을 강화하고 염증을 줄이는 약물, 변을 부드럽게 하는 변비약 등이 처방될 수 있습니다.
나. 비수술적 시술 (주로 1~2도 내치핵)
보존적 치료로 효과가 없거나 증상이 반복될 때 고려합니다.
고무 밴드 결찰술: 내치핵의 뿌리 부분을 고무 밴드로 묶어 혈액 공급을 차단하여 치핵이 괴사하여 떨어져 나가게 하는 시술입니다. 간단하고 효과적이지만, 통증이나 출혈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경화요법 (주사 경화요법): 치핵 부위에 약물을 주사하여 염증 반응을 유발하고 혈관을 굳게 만들어 치핵 조직을 축소시키는 방법입니다.
레이저/적외선 응고술: 레이저나 적외선을 이용하여 치핵 조직을 응고시켜 괴사시키는 방법입니다.
다. 수술적 치료 (3~4도 치핵 또는 심한 증상)
치핵의 크기가 크거나, 비수술적 치료로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증상이 심하여 일상생활에 지장이 큰 경우에 고려합니다.
치핵 절제술: 가장 보편적이고 확실한 치료법입니다. 늘어진 치핵 조직을 직접 잘라내어 제거하는 수술입니다. 개방형과 폐쇄형이 있습니다.
원형 자동 봉합기 치핵 절제술 (PPH): 늘어진 치핵 조직을 원형 기구를 이용하여 위로 당겨 올려 고정하고, 과도한 조직을 잘라내어 항문관을 넓히는 수술입니다. 통증이 적고 회복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치핵 동맥 결찰술 (HAL): 치핵으로 가는 동맥을 찾아 묶어 혈액 공급을 차단하는 방법입니다. 비교적 통증이 적은 편입니다.
5. 치핵 수술 후 회복 기간
치핵 수술 후 회복 기간은 수술 방법, 치핵의 심한 정도, 개인의 회복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입원 기간: 대부분 1~3일 정도 입원 후 퇴원합니다. (무통 주사 등으로 통증 관리를 합니다.)
수술 직후 ~ 1주일: 통증이 가장 심한 시기입니다. 특히 첫 배변 시 통증이 클 수 있습니다. 진통제 복용과 좌욕을 통해 통증을 관리합니다. 출혈이 있을 수 있으며, 이는 정상적인 회복 과정 중 하나입니다. 가벼운 일상생활(걷기, 가사일 등)은 가능하지만, 무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수술 후 1주 ~ 2주: 통증이 점차 감소하고, 수술 부위가 아물기 시작합니다. 실밥이 녹거나 저절로 떨어지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도 좌욕과 약물 복용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무리한 운동, 장시간 앉아있기, 술, 담배, 자극적인 음식 등은 피해야 합니다.
수술 후 2주 ~ 1개월: 대부분의 상처가 아물고 통증도 많이 줄어듭니다. 가벼운 운동은 가능하지만, 등산, 마라톤, 자전거 타기, 헬스 등 격렬한 운동은 한 달 이후에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술, 담배, 매운 음식 등은 최소 한 달간 삼가야 합니다.
완전 회복: 수술 부위가 완전히 아물기까지는 보통 4~6주, 심한 경우에는 8주 정도가 소요될 수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은 꾸준히 좌욕을 하고 관리가 필요합니다. 정상적인 활동은 가능하지만, 무리하지 않고 항문 건강을 위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핵은 부끄럽고 불편한 질환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흔한 문제입니다. 방치하면 증상이 악화되고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통증이나 출혈 등 불편한 증상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대장항문외과 전문의와 상담하여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강한 생활 습관과 꾸준한 관리로 쾌적하고 건강한 삶을 되찾으시길 바랍니다.